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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GENTLE MONSTER LAB의 로봇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다가오는 9월 28일부터 출근하게 됨으로써 취준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저에게는 또 하나의 우회로로 느껴집니다.
어째서 이를 “또 하나의”, “우회로”로 표현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연구실에서의 경험과 취업까지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 역시 자연스럽게 등장하겠지만, 이 글의 주지(主旨)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누르고 들어온 탭은 ‘After Lab’이지 ‘Thus Far Lab’이 아님을 상기해주신다면 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하는 지가 설명이 될 것입니다. 어쨌든 “또 하나”와 “우회로” 중에 우선 우회로에 대한 뜻을 먼저 설명하는 게 맞아보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또 하나”에 대한 부차적인 설명이 없이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사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실용 무용 —팝핀과 힙합— 학원을 다니며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중학생 때는 예고가 가고 싶었고, 고등학생 때는 예대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같은 학원의 형누나들 그리고 친구들 모두 한림예고부터 유명 예대에 다니는 모습을 보며 저도 그들과 나란히 함께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느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저의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으며, 어린 저로서는 당연히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넘어가는 겨울방학, 뒤늦게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해 메카트로닉스공학을 전공으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의 첫번째 우회로였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지거국’이라 부르는 정도의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다가 어느덧 입대 시기가 다가와 공군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시 복무하던 곳은 군내 영어시험 고득점자들이 가는 부대였으며 선후임부터 동기들까지 모두 흔히 말하는 “좋은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일종의 콤플렉스랄까 이를 느꼈으며,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스스로가 많이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시간이 나는 대로 군대에 보급되는 고전문학부터 철학책을 모두 먹어 치우듯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두번째 우회로였으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군대를 전역한 저는 인문학에 아주 푹 빠져 있었습니다. 복학하니 코로나가 유행이라 온라인 수업에 집중도 안 되니 강의는 틀어놓기만 하고 책만 읽었습니다. 공대 수업에서 설계니 구조 해석이니 제어 코딩이니 하는 게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쯤부터 기술(technology)과는 조금씩 멀어지고 사람 쪽으로 관심이 기울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물—로봇이나 컴퓨터와 같은 제품—과 사람을 모두 공부하는 디자인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박기철 교수님과 HIDE Lab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교 학부생 때는 로봇이나 제품의 구현 자체에 집중했었다면,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고 또 이것이 사람에게 어떻게 지각되고 경험되는가까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는 제가 춤을 췄었기에 잘 이해하고 해낼 수 있었으며, 그리고 “사람에게 어떻게 지각되고 경험되는가”는 인문학을 깊이 좋아한 덕에 마찬가지로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와서 보니 우회로들이 저를 어딘가로 인도해주고 있구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GENTLE MONSTER LAB에 취업하게 된 것이 그 인도된 곳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은 아닙니다. 저는 연구를 거듭하면서 ‘좋은 제품’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경험’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에 대해 연구 또는 리서치 하는 직종으로의 취업이나, 인지 과학 등의 학위를 위한 길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으니 어떻게 보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래서 지금의 이 결과가 저에게 또 하나의 우회로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HIDE Lab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었습니다. 한 번은 삼성전자와 AI Companion이라는 과제를 진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과제 마무리 단계 때 우리가 만든 제품을 활용해 사용자 평가와 프레임워크 정립을 수행했었습니다. 이 업무—사용자, 즉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업무—가 모든 업무 중에 가장 재밌고 즐기면서 할 수 있었으며, 이와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직종으로 진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AI Companion 과제를 수행하면서 빠른 프로토타이핑과 캐릭터성/생동성을 모두 살리기 위한 하나의 엔지니어링 솔루션으로써 Blender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로봇 모션 디자인과 구현을 담당했었습니다. 제가 맡았던 업무 중에 작은 과정 중 하나에 불과했으나 어찌 되었든 그 경험이라도 살릴 수 있었기에 GENTLE MONSTER LAB에 갈 수 있었습니다. 가장 즐기면서 한 것도 아니고, 가장 자신 있는 업무도 아닌 지나가듯 수행한 이력으로 취업하게 되었으니 이를 우회로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연구실이라는 말이 영어로는 laboratory이며, 연구는 research로 번역됩니다. Laboratory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왔으며, ‘laborare; 노동하다’라는 단어와 ‘torium; 장소’라는 접미사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Research도 마찬가지로 라틴어에서 왔는데, ‘re; 반복’이라는 접두사와 ‘circare; 순회하며 찾다’의 결합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고자 한 길은 전자의 의미에서 연구실—젠틀몬스터의 “LAB”—이 아닌 계속해서 순회하며 찾는 연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잘못된 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아니, 애초에 잘못된 길이 있는가 싶습니다. GENTLE MONSTER에서도 자체적인 매장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LAB의 로봇과 모션이 고객의 매장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디든 길은 있고 설령 없다고 하더래도 숨 돌리고 나와서 다시 가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기왕 길이라는 은유에 머물고 있으니 이를 다시 활용해보겠습니다. 삶이 길이라면 하나의 여행; travel이라고 상투적인 표현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이 travel의 어원은 라틴어 ‘tripaliare; 고문하다’—계속 이동해야 한다는 고역—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우리는 “금지되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거부되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길을 택하든 우린 몇 번이고 더 거부될 것이고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금지된 것도 없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대기업에 간 것도 아니면서 무슨 할 말이 많다고 유난을 떠느냐고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고작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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